생산성 향상

노트 필기의 대가, 토머스 에디슨의 노트 살펴보기

Notes in Notebook

본 블로그 포스트는이 게시물은 ‘노트 필기’에 관한 유명한 역사적 일화와 다양한 노트 필기 스타일을 다루는 연속 시리즈 포스트의 하나입니다. 노트 필기 습관이 어떻게 창의성을 높여주고 마음먹은 모든 업무를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노트 필기와 그 역사라는 주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 토머스 에디슨만큼 독보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도 없을 것입니다.

그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생산적인 발명가였다는 사실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에디슨은 평생 1,093개의 특허와 발명품을 내놓았고, 발전기, (등사기와 전기 문신기에 영감을 준) 전기펜, 연료 전지, 축전지, 전화 송화기 등 그의 수많은 발명품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활동의 곁에는 항상 노트가 있었는데요. 에디슨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발명이나 연구실 운영에 관한 세부 사항을 기록했습니다.

에디슨은 역사적 인물들 가운데 가장 엄청난 양의 노트 필기를 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남긴 노트 분량은 무려 500만 페이지를 넘는다고 하니 엄청나죠? 노트 내용의 대부분은 에디슨과 그의 회사들이 남긴 자료들로, 그가 벌인 사업과 관련해 주고받은 서신, 법원 기록 뿐만 아니라 그의 화려한 업무 이력이 상세히 기록된 메모와 노트 내용도 있습니다. 에디슨은 회계 장부부터 특허법까지 업무의 모든 측면에 관한 복잡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에디슨의 유산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할 때 지난 30년 동안 그의 노트를 꼼꼼하게 연구해온 프로젝트 팀만큼 적합한 사람들은 없을 듯합니다.
우리는 뉴저지 뉴브런즈윅에 위치한 럿거스대학교 Thomas A. Edison Papers Project의 책임자 겸 편집장인 Paul Israel씨를 만났습니다.

에디슨 페이퍼(Edison Papers)에서 진행하고 계신 일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네, 저희는 토머스에디슨 국립역사공원에 있는 기록보관소를 관리하는 국립공원관리청(NPS)과 일하고 있습니다. 럿거스대학교는 에디슨 페이퍼 프로젝트(Edison Papers Project)의 본산지로, 여기서 하는 일은 우리가 편집하고, 연구하고, 문서화하는 중인 500만 장 이상의 문서가 보관된 이 곳 기록보관서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로써, 에디슨이 관여했던 연구 및 사업 분야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깊이 이해하고 관련 분야의 학자와 일반 대중들이 이런 자료를 더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이 프로젝트는 럿거스에서 30년 넘게 진행되었습니다. 처음 작업에 착수했을 때만 해도 총 분량이 150만 장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현재 500만 장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기록보관소 및 개인 소장품을 통해 3만 장 이상을 찾아냈어요. 우리는 이 세 종류의 문헌과 서신 모음을 온라인 디지털 이미지 판본으로 전환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가 남아 있어요. 그 가운데 저희가 가장 초판본이죠. 우리는 원본 노트와 문서를 재검토해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교에서는 다섯 명의 전담 편집자들이 문서를 살펴보고, 이를 이용해 혁신과 기술 및 비즈니스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에디슨의 수많은 문서를 훑어보면서 그의 생산성 관해 어떤 것을 배우게 되셨나요?

저희가 약 500만 페이지의 방대한 기록을 정리하는 이유는 에디슨이 여러 곳의 연구소와 수많은 사업체를 운영했기 때문입니다. 에디슨이 마지막 20년 동안 남긴 문서 대부분은 1911년에 여러 사업체를 하나의 법인으로 통합하면서 거치게 된 수많은 행정 절차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거대한 조직을 관리하려면 새로운 서류 작업이 많이 필요했겠죠.

1980년대부터 이 거대한 문서 기록을 가지고 저희가 해온 작업은 가장 중요한 문서를 마이크로필름에 담고 나중에는 이것을 스캔하여 온라인에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는 기록보관소에 있는 19세기 자료를 모두 마쳤고, 향후 10년에 걸쳐 20세기의 의미 있는 자료를 정리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다른 보관소와 개인 소장품 중에서 입수한 수천 개의 문서를 스캔했는데, 이 부분의 프로젝트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습니다.

선별된 자료를 문서화하고 주해를 달아 펴낸 책에서 저희는 에디슨이 발명가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19세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물론 20세기 초에도 그는 발명가 겸 혁신가로서 생산성을 발휘하고 영향력을 누렸지만 나이가 들면서 문화적 아이콘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노트 필기 습관이 에디슨의 노트 필기 방식에서 왔다고 보시는지요?

직접적인 영향은 없더라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필기 방식과 에디슨의 필기 방식 사이에서 연관성을 발견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으니까요. 그들이 매일 따르는 프로세스 말이죠.

에디슨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염두에 두었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경제성이었습니다. 기술 개발에 대해 생각할 때도 경제성은 언제나 중요시되었죠. 그는 늘 시장이라는 측면과 사용자 비용, 제조 비용, 제조의 용이성이라는 측면을 생각했습니다. 이 경제성이라는 요인은 진행되고 있던 기술적 업무에 있어서도 항상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성공하는 기업들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에디슨에게 초기의 발명 단계는 프로세스의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규모를 확장해서 기술을 시장에 선보인 뒤에는 계속해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꾸준한 연구 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더 잘 만들고, 더 효율적으로 작동시키고, 더 사용하기 쉽게 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죠. 그것은 상품화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혁신 단계의 일부였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작업장과 연구실에서 이루어진 개념적, 독창적 작업은 에디슨에게 전체 프로세스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에디슨만큼 성공적으로 생산성을 통제했던 다른 발명가가 또 있었나요?

에디슨만큼 광범위한 성공을 거두었던 사람이 선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중요한 혁신들을 이루어냈는데, 그런 기록에 견줄 만한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한창 발명을 하던 시기에 이미 그는 당시 너무나 많은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에디슨의 전성기 이래로는 어떤 개인이나 심지어 기업도 그 정도의 지속적인 혁신을 이어나가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새로운 산업마다 새로운 리더십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스티브 잡스가 특정 분야에서 그러한 성공을 어느 정도 거둔 것 같습니다. 개인용 컴퓨터라든지 iPod와 iPhone로의 전환, 그 이후 등장한 iPad를 보면 그렇죠. 그는 기존 시장의 변화를 주도했다는 측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이었습니다.

에디슨은 어떤 식으로 정리를 했나요?

에디슨이 연구실의 기록을 관리한 방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는 특허를 받으려면 진행된 작업을 완벽하게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가로 6인치 x 세로 9인치 크기에 약 285페이지 두께의 표준 사이즈 노트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연구실 작업대 위에 노트들을 놓아두곤 했습니다. 손이 닿는 대로 노트를 집어들고 메모하기 위해서였죠. 저희가 자료를 조사하다 보면 똑같은 실험에 대해 기록된 노트가 서너 권 나올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왜 이런 방식으로 기록했는지 불분명한 노트도 있습니다. 정보 정리는 에디슨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주로 특허 방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요 작업별로 색인을 부여하려고 시도한 노트들도 몇 권 있습니다. 노트 안의 기존 정보에다 색인을 부여하려고 했던 것이죠. 나중에 가서 1890년대에 GE와 웨스팅하우스가 양대 전기 회사가 되었을 때, 두 업체는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고 경쟁에 뛰어드는 군소업체들로부터 회사를 공동 방어했습니다. 특허조정위원회를 세우고 에디슨의 노트를 자료로 활용한 것입니다. 색인을 분명히 표시하기 위해 노트 안에 작은 종이 조각을 끼워놓기도 했습니다.

자료 기록은 골칫거리였습니다. 에디슨이 1880년 무렵 사무 직원을 한 명 지정해 연구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작업을 매일 일지에 기록하게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여러 팀의 연구원들이 전기 시스템의 개발 작업을 나누어서 하던 때였습니다. 이 일지에 내용이 기록되고 있는 다른 노트와 페이지를 참조해 놓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에디슨은 연구원들이 각자 자기 노트를 기록하게 했습니다. 그 방식이 진행 상황을 기록하기에 더 적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디슨은 또한 작은 포켓 노트를 들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특히 생애 후반기로 갈수록 그런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그는 스스로 참고할 목적으로 연구실의 진행 상황이나 일과 시간 중 일어난 일을 기록하기도 했고, 사업 및 연구에 관련된 주변 정황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기록했습니다.

에디슨은 노트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시스템을 활용했나요?

정보를 어떻게 찾아볼 것인가는 분명 숙제였습니다. 특정 자료를 찾아볼 수 있도록 나중에 만들어진 노트들도 가끔씩 발견됩니다. 특허 싸움 중 얼마나 쉽고 간편하게 노트 내용에 접근할 수 있느냐는 매우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에디슨은 그날 그날의 작업을 직접 관리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연구실을 방문해 그곳의 진행 상황을 직접 살폈기 때문에, 업무 내용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에디슨이 할 일 목록(to-do list)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에디슨에게 그런 성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요. 뉴어크에서 처음으로 대형 연구소를 시작했을 때 그와 조수들은 할 일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웨스트 오렌지에 연구소를 설립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에디슨이 원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해 놓은 목록들이 종종 발견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에디슨의 할 일 목록 중 하나를 보시죠.

EdisonToDo

이것은 원래 총 4페이지 짜리 목록의 첫 번째 페이지입니다. 이러한 기록 방식은 에디슨이 웨스트 오렌지 연구소를 설립했을 때 진행하고 있던 모든 프로젝트와 계획 중이던 몇몇 프로젝트들을 관리하던 것입니다.

그는 실험 내용을 매우 신중하게 기록했습니다. 웨스트 오렌지에서 진행된 모든 프로젝트에 번호를 할당했죠. 그의 모든 연구소에서 이러한 회계 장부와 실험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디슨은 기록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어느 곳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지 끊임없이 비용을 관리했던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생산성을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았을까요?

에디슨이 그토록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데려다 프로젝트를 진행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동시 다발적으로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전기 조명 분야에서 모든 경쟁자들을 완전히 제칠 수 있었죠. 그는 전구 개발에 가장 비중을 두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전체적인 시스템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디슨은 노트 필기가 자신의 업무 방식에 매우 요긴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있어 그의 중요한 기록 대상은 비단 성공 사례만이 아니었습니다. 왜 어떤 방법은 효과가 있고 어떤 방법은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기록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했습니다. 전체 프로세스를 염두에 둠으로써 진행 중인 일들을 어떻게 시스템화할 수 있을지 파악하고,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현재 업무 방식의 개선 방안을 생각해 내고자 했습니다. 깨달음은 노트 필기를 통해 내용을 직접 쓰고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과정으로부터 왔습니다. 바로 이 과정을 통해 프로세스에 대한 새로운 이해력을 얻은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Evernote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신가요?

저는 하려는 일을 메모해 놓지 않으면 절대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혹은 나중으로 미루어지기 십상이죠. 저는 해야 할 일들을 일단 기록해 둡니다. 브라우징을 할 때는 스크랩을 합니다. 물론 페이지 북마크를 해둘 수도 있지만 얼마 후면 ‘대체 그 북마크가 어디에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때가 옵니다. 제가 스크랩하고자 하는 건 웹사이트가 아니라, 읽고 있는 내용 중에서 나중에 다시 보고 싶은 특정한 내용이니까요. 추후에 참고하려는 내용에 대해서는 따로 노트를 하기도 합니다.

글을 쓸 때만 노트 필기를 하는 게 아니라 글을 읽을 때도 나중의 프로젝트나 개인적인 필요를 위해 더 살펴보고 싶은 내용을 발견하면 그에 관해 메모를 해둡니다.

에디슨은 변화된 기술과 더불어 모바일 기기를 활용할 수 있는 오늘날의 노트 필기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에디슨이 오늘날의 노트 필기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짐작해 보려면 오늘날 사람들의 반응을 참고하면 될 듯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직접 쓰는 걸 좋아하고 젊은 사람들은 iPad를 좋아하죠. 에디슨은 첨단을 달리고 싶어했던 사람인 만큼, 태블릿이나 iPad를 사용했을 것 같습니다. Evernote 같은 크로스 플랫폼 시스템을 썼을지도 모르죠. 필기를 하고 나중에 검색할 수 있게 태그 걸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분산된 노트를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그런 도구를 무척이나 애용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Evernote 같은 것이 있었다면 에디슨은 틀림없이 좋아했을 것입니다. 어디에서 입력했든 상관없이 어디에서나 즉시 찾아보고 활용 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우리는 에디슨이 조명 시스템을 연구하던 시기에는 노트가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는 경우를 발견했습니다.

물론 저희 연구에 있어서도 자료가 디지털화되어 매우 편리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면에 여러 개의 노트를 나란히 띄워서 볼 수도 있죠.

실리콘 밸리에 남겨진 에디슨의 유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에디슨의 유산은 그가 발명을 연구로 전환하고 그 연구를 다시 성공적인 혁신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아낸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연구실과 작업장에서의 일뿐만이 아니라 시장에 제품을 내놓는 요령을 알고 있었죠. 오늘날 진행되는 많은 일들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에디슨이 했던 작업들과 상당히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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